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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웹진] 시간 여행의 공식을 극복하는 방법
제목 [오늘의 웹진] 시간 여행의 공식을 극복하는 방법
작성자 대표 관리자 (ip:)
  • 작성일 2012-10-30 10:06:35
  • 추천 추천 하기
  • 조회수 367
  • 평점 0점

오늘의 웹진은 지승학 영화평론가님의 <루퍼> 평론입니다.

 

 

시간 여행의 공식을 극복하는 방법
 
- 라이언 존슨 감독의 <루퍼>론


   (지승학)  

 

intro.

 

  <루퍼>(2012)라는 이 영화에서는 조셉 고든 레빗이 브루스 윌리스와 닮아 있다. 그런데 닮음의 목적이 세월의 흐름을 나타내기 위한 정교한 장치가 아니라 시간 여행의 당위성으로만 보인다면 이미 이 영화에 임하는 자세는 어느 하나의 정지된 관점으로 점철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는 일부 평론가들이라고 빗겨가지 않는다. 이상한 관점의 일괄적인 경화(硬化)는 그렇게 전염되어 간다.

 

  “이 영화는 그저 기존 시간 여행을 답습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이 말 역시 얼핏 <루퍼>에 대한 평의 관성을 깨트리는 말 같지만 다시 들여다보면 시간 여행이라는 장르 영화로 이미 규정짓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실 많은 평들과 스포일러들은 이 영화를 이미 시간 여행으로 규정한 채 그 지점에서 자발적으로 정지해 버리는 우를 범한다. 다시 말해, 시간 여행이라는 미명 하에 영화 속 일련의 사건들을 판에 박힌 해석의 틀로 또 다시 밀어 넣어 재단해 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루퍼>는 많이 아까운 영화다.

        <영화 루퍼, 라이언 존슨>

 

 

탈-시간 여행의 정신적 표현

 

  시간 여행의 공식은 엄밀히 말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를 끌어와 논리적인 추론의 완벽함으로 맞세우는 연출력 측정의 장치 같은 것이다. 감독들은 이 불가능한 미션을 통해 자신의 연출력을 과시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시간 여행은 항상 초현실적 요소를 현실화 시키고자 하는 노력의 산물로 그려지고는 한다.

 

  그러나 영화란 매체는 가상적이고 상상적인 ‘환상’이 '현실을 전제'하고 벌어지는 세상이며, 단지 그 세상을 은유하는 정신적 이미지의 영역에 속해 있는 것이다. 물론 오해의 소지는 있다. 그러나 요점은, <루퍼>란 영화는 기본적으로 타당함이 주어진 시간 여행이 아니라 무한히 확장할 수 있는 정신적 이미지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루퍼>는 시간 여행의 개념을 현실적 이론에 투영하고자 했던 기존의 공식을 설렁 설렁 넘겨버리고(그렇다고 아주 망쳐놓는 수준은 아니다) 오히려 이를 원래의 환영, 즉 정신적 이미지로서의 가치를 더욱 더 높여 보려한, “어차피 말도 안 되는 시간 여행이라면 그것이 가능한 정신적 상상력에 기대어 나의 자아의 문제에 접근하고자 하는”, 바로 그런 류의 심적 표현을 위한 영화, 게다가 이를 위해 가식적인 시간 여행의 공식을 조금은 벗어나려 한 그런 영화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루퍼>는 시간이 얽히고 설킨 사건에 어떤 당위성을 부여하려는 시간 여행의 클리쉐(cliche, 상투적인 표현 혹은 진부한 장면)에서 벗어나 현실의 형틀을 심적 갈등으로 일그러트림으로써 자아의 문제로 회기하도록 노골적으로 유도한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는 조셉 고든 레빗이 출연한 또 다른 영화 <인셉션>과 정확히 대치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인셉션>이야말로 꿈이 아닌 미시적 시간에 대한 여행이며, 이를 철저하게 현실적이고 논리적인 추론 과정을 통해 엄밀하게 담아내고자 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초연한 '나'의 극복 문제

 

  <루퍼> 속 명제는 이렇다. “자신을 극복하라.” 그런데 여기서의 극복은 대부분 다른 자아 즉 타자의 죽임을 통해 이루어졌고 역사적으로, 학문적으로 늘 그렇게 여겨져 왔다. 타자의 목적은 자아를 위해 나타난 보충물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런데 <루퍼>는 여기에 의문을 던진다. “‘자아’의 문제는 타자의 문제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의 문제다.”

 

  자신의 가슴에 장총을 겨누어 도래해선 안 될 미래를 바꾸고자 하는 젊은 조(조셉 고든 레빗)의 마지막 태도는 타자로서의 죽음이라기보다 자아 그 자체로서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희생이 아닌 이 부분에서 우리는 반드시, 모든 현실적 논리 증명을 배제하고 '나'의 극복 과정 그 자체에 방점을 두고서 조(조셉 고든 레빗)를 바라보아야 한다. 젊은 조와 늙은 조의 ‘닮음’은 바로 이 씬을 위해 마련된 복선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막아야할 미래는 젊은 조(조셉 고든 레빗)의 자기 극복으로 인해 허상에 불과해진다.

 

  시간 여행이라고? 시간 여행은 그저 늙은 조(브루스 윌리스)가 폐쇄 공간으로 기어들어간 것을 통해 전제된 미약한 암시에 불과하다. 오히려 시간 여행이라 확신을 가져야 하는 지점은 몸의 상흔, 절단을 통해 전달되는 몸체의 메시지에 의해서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소통의 전혀 다른 방식이지 시간 여행의 개념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의 몸을 통해 전달되는 나를 향한 메시지. 몸속으로 체화된 과거 사건의 끔찍한 반영. 바로 비현실적인 이 사건의 연결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시간 여행의 낡은 공식을 극복하고 현재화된 과거를 돌아 볼 수 있게 된다.

 


개인의 추억과 대의(大義)의 충돌

 

   이 영화에서 나와 나의 구분법은 오로지 젊었느냐? 늙었느냐? 문제로만 규정된다. 사실 그 둘은 본질적으로 타인이다. 분장이 아무리 브루스 윌리스를 고려했다고 해도, 미묘한 인상의 변화마저 카피 했다하더라도 그 유사성은 두 캐릭터의 충돌로 그려질 뿐이다. 특히 <루퍼>에는 궁극적으로 개인의 추억(황혼의 조가 누렸던 행복한 가정사)과 대의적 합목적성(루퍼 살인자의 개과천선 혹은 살인의 방지)이 서로 갈등을 일으키는 상황으로 치닫지 않는가? 그러나 이는 결국 자기 극복에 해당되는 갈등 구조치고는 탁월하게 전개되다가 소멸되 버린다. 그렇게 늙은 조(브루스 윌리스)가 그토록 유지하고 보호하고자 했던 자신의 과거, 사랑하는 이와의 추억은, 이를 알 리 없는 젊은 조(조셉 고든 레빗)에게 옳지 않은 '살상의 파국'을 막으려는 대의를 깨닫게 하는데 극적인 촉매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두 자아 중 누구의 판단이 옳은 것인가?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마찬가지로 <루퍼>를 통해서 찾을 수 있게 될지 모른다. 이 영화는 그 고뇌의 과정에 개입함으로써 판단을 관객들에게 맡기고는 있지만, 여기에 암묵적인 답은 이미 설정되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한 인간의 고뇌로 귀결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그렇게 <루퍼>의 진짜 의미는 서사 구조 속에 마련된 어떤 결론보다 두 자아가 충돌하는 과정과 그 속에 놓인 개인의 추억과 대의적 과업의 소멸 그 자체, 다시 말해 거기서 파생되는 자아 갈등의 세계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그것이 이 영화의 실질적인 의미 생성의 지점이고 조셉 고든 레빗의 연기가 빛을 발하는 표현 생성의 지점이다.

 


finale.

 

  시간 여행. 이는 이 영화를 보는 데에서 만큼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개념이다. 연출이 허술하단 얘기가 아니다. 우리가 시간 여행이라는 틀로 섣부른 판단을 내린 만큼 잃을 것이 많은 영화란 얘기다. <루퍼> 만큼은 시간 여행이라는 공식에서 살짝 벗어나, 나의 정신 세계 속에서 싸우고 있는 또 다른 자아는 무엇이며, 그것과 충돌하면서 발견하게 되는 나의 대의(?), 그리고 고뇌의 주제는 무엇인가를 느껴보게끔 한다는데 더 큰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루퍼>를 통해, 돌아오지 않을 과거의 나를 생각해 보고, 미래의 또 다른 나를 한번쯤 곱씹어 보게 된다면 그 일이야말로 진정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되는 일일런지 모른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극적으로 닮아가는(혹은 가까워져 가는) 서사 구조 속에서 그들은 누구도 아닌 ‘나’를 표현한다. 이 영화를 시간 여행의 공식으로만 보기 아까운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다른 평론들을 보시고 싶은 분들은 아래 링크를 클릭해 주세요.

 

링크 : http://www.munhwada.com/home/m_view.php?ps_db=movie_report&ps_boid=7&ps_m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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