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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예니체리’의 고뇌
제목 어느 ‘예니체리’의 고뇌
작성자 대표 관리자 (ip:)
  • 작성일 2013-01-11 10:39:51
  • 추천 추천 하기
  • 조회수 654
  • 평점 0점

오늘의 웹진은 이정현 해외문학평론가의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평론입니다.

 

<외국문학 읽기> 어느 ‘예니체리’의 고뇌

- 모신 하미드의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론


“예니체리에 대해 들어 본 적 있나요?” “없습니다.” 그가 설명했어요. “에니체리는 오스만 제국에 사로잡혀 당시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였던 이슬람 군대에서 군사 훈련을 받은 기독교 소년들이었어요. 그들은 사나웠고 대단히 충성스러웠죠. 그들은 그들 자신의 문명을 없애려고 싸웠죠. 그들에겐 돌아설 곳이 달리 없었어요.” (……) “미국에 몇 살 때 갔죠?” “대학에 다녔으니, 열여덟 살 때였어요.” “훨씬 나이가 많았군요. 예니체리들은 늘 어렸을 때 잡혔지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으면 새로운 제국에 충성하는 게 훨씬 어려웠을 테니까.”
 
  모신 하미드의 장편『주저하는 근본주의자』(민음사, 2012)는 한 남자의 긴 고백, 혹은 진술만으로 이뤄졌다. 고백(진술)하는 자의 이름은 찬게즈(Changez). 그는 파키스탄의 일 억이 넘는 인구 중에 단 두 명에게만 입학 기회가 쥐어지는 미국의 명문 프린스턴 대학에 합격한 수재다. 뛰어난 성적으로 프린스턴을 졸업한 찬게즈는 많은 연봉을 보장하는 ‘언더우드 샘슨 앤드 컴퍼니’ 라는 자산감정 회사에 취업한다. 국제도시 뉴욕 한복판에 우뚝 선 22살의 청년 찬게즈의 입지전적인 모습은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한 후진국 엘리트의 전형, 그것이었다. 후진국 엘리트의 입지전적인 삶은 예기치 않은 ‘사건’과 마주하면서 급격하게 휘어진다. 거침없이 약진하던 청년의 삶을 휘어지게 만든 사건은 두 가지. 사랑과 테러였다.

   찬게즈는 프린스턴 동문인 상류층 백인 여성 에리카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에리카는 죽은 과거의 연인 크리스를 잊지 못하고 지독한 몽상에 시달린다. 두 사람의 섹스는 에리카가 눈을 감은 채 찬게즈를 크리스로 상상해야만 가능했다. 함께 존재하지만 서로 다른 곳을 응시하는 두 사람의 사랑은 2001년 9월을 기점으로 파국을 맞는다. 출장을 간 필리핀에서, 찬게즈는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는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테러’를 TV로 시청한다. 그 순간에 무의식적으로 엄습한 감정을 찬게즈는 이렇게 진술한다.
 
“나는 그 모든 것의 상징성에 빠져들었던 거죠. 누군가가 그렇게 가시적으로 미국의 무릎을 꿇렸다는 사실에 그랬던 거죠. (……) 하지만 당신도 그런 감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할 거예요. 당신은 미국 무기가 적의 건축물을 폐허로 만들어 버리는, 최근에 상당히 유행하는 비디오클립을 보면 즐겁지 않나요?” 

  찬게즈의 삶은 9.11 테러 이후 서서히 달라진다. 자신의 조국 파키스탄의 ‘형제 국가’인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하는 미국의 행태를 보면서, 그리고 국제도시 뉴욕에서조차 일상적으로 자행되는 아랍인 차별을 겪으면서 찬게즈는 그 동안 자각하지 못했던 자신의 ‘근본’을 깨닫게 된다. 쇠락한 칠레의 도시 발파라이소에서 일을 포기하고 뉴욕으로 돌아온 찬게즈는 마지막으로 에리카가 입원한 정신병원을 찾아가지만 그녀는 실종된 상태였다. 그녀가 자살한 징후를 포착한 그는 회사를 관두고 파키스탄으로 돌아간다. 찬게즈는 ‘예니체리’와 같았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파키스탄의 대학에서 미국의 이면을 고발한다. 

   찬게즈가 기꺼이 자신의 삶을 의탁하고자 했던 미국이라는 사회는 테러에 직면하자 곧바로 무자비한 폭력을 추구하는 괴물로 진화하고 만다. 끝내 파국을 맞이하는 찬게즈와 에리카의 사랑은, 포용의 포즈를 취하다가도 두려움과 위기에 직면하는 순간 약자들을 타자로 전환하여 ‘적’의 위치에 배열하는 ‘미국의 불편한 진실’과 맞물린다. 아랍인들을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 간주하고 테러의 배후를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미국의 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모든 잔혹한 행위의 이면에는 두려움이 존재한다. 타자가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겨질 때 인간집단은 그것을 없애기 위하여 타자를 지우는 작업에 돌입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행위는 자신과 타자 모두에게 더 큰 상처를 강요할 뿐이다. 2001년 이후 미국이 벌이고 있는 전쟁은 그 명백한 증거가 아닌가.

    찬게즈의 고백이 끝나갈 때까지 말없이 듣고 있던 미국인은 재킷 속으로 손을 넣어 ‘반짝이는 금속’을 꺼낸다. 말없이 찬게즈의 고백을 들어주던 미국인이, 그를 암살하기 위해 파견된 자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징후는 찬게즈의 언어를 ‘고백’과 ‘진술’의 경계에서 흔들리게 만든다. 말미에 드러나는 불길한 징후는 어떤 절박함으로 이어진다.

   이 소설은 우리 역시 ‘예니체리’와 같은 운명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준다. 끔찍한 전쟁까지 겪었던 남한과 북한은 오랜 세월에 걸쳐서 각기 다른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대립했던 강대국들의 ‘예니체리’가 아니었던가. 굳이 분단과 전쟁을 거론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정치와 종교, 계급과 지역으로 대립하는 것이 일상화된 지금-여기의 사회에서 당신은 특정 집단의 예니체리로 활동하지는 않았는가.

   기독교 소년병들로 구성된 술탄의 친위부대 예니체리가 강력했던 이유는 단순하다. 어린 시절에 붙잡혀 왔기에 자신의 근본을 자각할 계기를 상실했으므로 그들은 술탄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면서 잔혹해질 수 있었다. 가난한 조국을 떠나서 성실하게 학업에 열중하며 안정된 삶을 추구하다가 예기치 않은 ‘사건’을 통과하면서 자신이 미국이라는 ‘제국’에 종사하는 예니체리였음을 자각하는 찬게즈는 단지 한 파키스탄 청년의 이름이 아니다. ‘찬게즈’는 강자들의 대리전에 희생되었던 수많은 사람들, 자신들이 신봉하는 상징계의 질서를 위해 기꺼이 타자를 ‘적’으로 돌리는 행위를 주저하지 않는 자들의 대명사다.
 
  이를테면 전쟁과 불화의 기억을 되새기면서 시종일관 강경한 대북관을 주장하는 자들, 군복을 입고 자신들이 빨갱이로 규정한 전직 대통령의 묘를 파헤치겠다고 나서는 자들, 극우사이트에서 자신들과 다른 정치적 견해를 지닌 자들을 무자비하게 난타하면서 사생활까지 침해하는 자들은 바로 냉전세력의 예니체리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얘기하고 싶다. 소설 속에서 찬게즈는 자신이 예니체리와 같았음을 자각한 이후 미국의 불편한 진실을 폭로하게 되지만, 결코 폭력을 통한 보복을 주장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나는 이렇게 설명하고 싶다. 그가 ‘9.11’이라는 폭력적인 사건과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사건을 동시에 통과했기 때문이라고.

  P.S: 아직 우리에게는 낯선 파키스탄 작가 모신 하미드의 소설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는 동 명의 영화로 만들어져 2012년 베니스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보인 바 있다.

 

더 많은 평론들을 보시고 싶은 분은 아래 <웹진 문화 다> 링크를 클릭해 주세요. 

링크: www.munhw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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